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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대전시 동구 추동에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인 도법스님을 만났다. 장맛비를 맞으며 계족산을 넘은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은 저녁 무렵 한밭레츠와 민들레의료생협 회원들과의 생명평화기원 100배를 올렸다. 순례단은 마을 주민이 탁발한 저녁을 함께 먹고 잠시 숨을 돌렸다. 비를 맞으며 산을 넘은 탓인지 스님은 약간 지쳐보였다. 그러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했고, 웃을 적마다 고른 이가 드러나 천진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자기 소개를 한 뒤 조심스레 인터뷰를 청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내 개인적인 필요에서, 두 번째는 시대적인 필요에서였다. 부처님의 일생 자체가 순례의 삶이었다. 불교사적으로 보면 고승들은 자기완성과 사회완성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았다. 승려라면 누구나 탁발순례를 꿈꾼다. 나 역시 출가한 후 그같은 개인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실현된 것이다. 순례는 구체적으로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시작하면서 구상하게 되었다. 최근 100년의 인간 역사는 황폐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두 개의 물음을 할 수 있다. 왜 이런가, 이것이 변화 발전인가? 지금껏 생명의 위기와 평화 위기를 자초했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21세기에는 살림과 평화의 방식으로 문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평화'란 말은 흔히 해도, 개인도 사회도 평화롭게 문제를 풀지 못한다. 일상적 평화를 도외시하고 있다. 반전평화를 외치면 뭐 하나? 도처에 성폭력, 가정폭력,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폭력이 존재한다. 베트남전을 상기한다면 일본이나 미국을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일상의 평화가 중요함을 말하고 싶었다."
"2003년 이라크전이 발발했다. 우리 국민이 그 전쟁을 대하는 무력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국가도 정부도 힘이 없어서 우리의 운명이 누군가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 전쟁에 처한 운명의 당사자와 군대를 보내야하는 한반도의 당사자가 아무런 힘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 참담한 무력감을 들게 했다. 세계시민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전쟁이 나도 피난가지 않고 자기의 전 존재를 버리고 비폭력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 10만 명만 존재한다면 그런 무력감 따위는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생명평화운동 진영에서 긴 논의 끝에,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 10만 명을 길러내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 방법으로 현장 순례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 순례는 범종교 시민사회가 함께하기로 했다." - 순례 첫해와 3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내부적으로는 생명평화운동 진영의 역량이 탄탄해졌다. 사회적으로는 생명평화 인식이 대중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 순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데. "(웃음) 뭔 헛짓거리냐는 말 많이 들었다. 시간이 필요하다. 깊은 대화를 하다 보면 이해하게 된다. 근본문제가 안 풀리는데, 문제를 아무리 해결하려 해도 해결이 되나." - 현재 우리나라 환경운동단체가 보강해야 할 점은? "삶의 철학이 약하다. 모든 운동은 삶을 바꾸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회원 개개인의 삶의 가치와 철학을 세워주고, 생활 방식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삶의 변화를 꾀하지 못하면 한계점에 다다른다. 활동가들도 일을 하면서 자기 주체가 사라지면 지친다. 정부·기업 대상에서 국민 대중 대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 우리나라는 정부나 기업이 일으키는 환경사안이 너무 많아 싸우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 그러나 이제는 긴 호흡으로 가야한다. 문제의 본질을 잘 짚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과도 동반자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싸움 일변도와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 이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온다. 인간은 과거에 비해 진보하지 않았는가? "생명평화의 조건이 더 풍부해져야 진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을 알고 다루는 방법은 퇴보했다. 세월은 흘렀어도 인간은 다람쥐 쳇바퀴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이 진보했다면 핵무기 따위를 만들었겠는가." - 생명평화의 조건이 무엇인가? "평화의 조건으로는 올바른 이해, 환경적·생리적·사회적 조건이 있다. 평화는 목적이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이다. 평화의 조건이 만들어지는 만큼 평화가 존재한다. 조건이 만들어지면 있고 만들어지지 않으면 사라진다.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상대의 개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서 평화는 시작되고 가꾸어진다. 주체적 세계관과 철학, 가치의식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자기 혁명에 기초하지 않는 사회혁명은 성공하더라고 지속되기 어렵다. 평화를 위한 전쟁은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힘의 균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도 크게 잘못되었다. 지금 세계를 보라. 그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죽을 지경이다."
- 무슨 공부를 해야 하나?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대상에 대한 공부는 많이 한다. 자동차·증권·학문적 지식, 정말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문제는 '소견머리'와 '버르장머리'에서 발생한다. 문제의 해결을 보려면, 그 '소견머리'와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하지 않는가. 생명평화탁발순례는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평화로워지는 방법은 무엇인가? 평화에 도달하는 길은 오직 하나, 평화로움밖에 없다. 평화로운 생각, 평화로운 말, 평화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 혹시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깨달으면 저절로 평화로워지는가? "그렇다. 당연한 일이다." - 앞으로 순례를 계속할 계획인가? "나는 거지중이다. 밥주고 재워주면 어디든 간다." 인터뷰를 마치자 대청호 너른 호숫물에 다시 빗줄기가 떨어졌다. 스님은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은 걸음 옮기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하신다. 도보 순례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인가를.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길에서 도법스님의 생명평화 설법을 듣는 사람이 언제쯤이면 10만명이 될까. 온전히 생명평화를 품은 10만명이 생긴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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