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인물인 고흥 류씨가 일찍 남편이 죽자 개가 하라는 친정 어머니의 말을 뿌리치고,
아들을 업고 개성에서부터 이 동네까지 걸어와, 시가에서 자식을 키우며 살았다는 얘기를
당시의 대 사상가요 서예가인 송시열이 글씨를 쓴 비석이다.
글씨는 행서인데, 크기의 변화라든가 전체적인 신사가 당대 선비 글씨 중에서도 뛰어난 필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비석이 정력각 안에 있어야 하는데, 정려각 밖에 덩그라니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놓여
있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