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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참을 구합니다.

노석 임창웅 2005. 12. 30. 23:08

지금 평택의 팽성읍 도두리와 대추리에는 그저 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농부들이 자기의 사유재산을 정부에 강제로 빼앗겨 미군들의 부대로 쓰게한다는 정부에 맞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가수 정태춘 박은옥을 필두로 하여 미술, 음악, 굿, 문학인들과 민예총의 각 파트에서 결합하여 문예인들도 그들의 손을 잡고자 결의를 하였습니다. 상세한 일정은 다음카페 황새우울에 있습니다.

 저희 회장님도 그들을 돕기 위해 작품을 몇 점 내놓으셨습니다.

 작품을 후원해 주셔도 좋고, 향후에 있을 본격적인 활동 기자회견, 현지에 가서 예술행위를 하는 일에 함께 해주셔도 좋습니다. 아래의 내용과 카페를 방문하시고 뜻을 같이 하실 회원님들은 아래에 댓글을 달아주십시요. 정말 민서협 회원님들은 댓글에 너무 인색하신 것 알고 있으시죠 ㅎㅎㅎ 

 

 

대체 왜, 누굴 위해, 어디로 떠나란 말이냐.

- 여든여덟 살 잡순 조선례 할머니에게 답하라


 

따갑던 유월의 햇살이 서쪽 하늘로 기울고, 이따금 목 뒤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큼지막한 산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넓고 너른 들, 어둠이 사위를 감싸오기 시작했지만 유월의 들판은 푸른빛을 스스로 발산하며 한껏 키를 키우고 있었다.

어두운 시간으로부터 힘을 얻은 바람이 깃발을 때린다. 떠나라....


몸빼를 입은 늙은 여인들이 왁자지껄 어두운 들판을 가로지른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한둘이었던 늙은 여인들이 어느새 예닐곱으로, 십수 명으로 길게 늘어 들판을 건넌다. 너른 들판은 지루했지만, 오르내림이 없어 힘겹지 않았다. 늙은 여인들 틈을 가르며 자전거를 탄 늙은 영감들이 휘익 앞질러 간다. 늙은 영감이라고 하기엔 젊은, 중년의 아저씨들도 오토바이를 타거나, 트럭을 타고 건넌다. 저 들녘을.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태연하게 늙은 여인들 틈에서 잡담을 나누며 걷는 남정네들도 있다. 누구라도 손은 단단했다. 저 너른 들판에서 흙으로 단련시킨 저 단단한 손들.


전구 몇 개로 불을 밝힌 비닐하우스 안이 소란스럽다. 특용작물을 포장해 도회지로 내다 팔려는 것일까? 이 마을 누군가의 팔순잔치를 하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이비 교주를 떠받드는 모 종교집단의 통성기도회? 특용작물은 없었다. 팔순 노인들이 수두룩했지만, 잔칫날도 아니었다. 찬송가와 회개의 울부짖음 역시 없었다. 전구를 더 켜지 않았는데도 비닐하우스 안이 점점 밝아온다. 사람이 모여들수록 어둠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저 마다 손에 쥔 저것. 단단한 손들에 촛불이 들려있다. 너른 들에서 햇볕과 싸우느라 검붉게 탄 얼굴들은 촛불 앞에서 벌겋게, 그리고 수줍게 달아올랐다.


낼모레면 오십줄에 들어선다는 권혁범 씨가 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막내축에 드는 사람이다. 권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에.... 오늘도 이렇게 비닐하우스를 찾아주신 팽성읍 주민여러분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이렇게 촛불집회를 연지도 어느새 300일이 다 돼갑니다. 갑작스럽게 손에 든 촛불이지만, 그 동안 눈바람 비바람 다 이겨가며 이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주민 서넛이 돌아가며 짧고 소박한 연설을 이어간다. 가끔씩 구호도 터져 나오고, 웃음도 터져 나온다. 손에 쥔 촛불이 벽과 하늘을 둥글게 감싼 비닐에 부딪혀 두 개로, 네 개로 늘어난다. 밤하늘에 촛불이 빛나고 있다.


“에....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에 이어서, 이번에는 내일부터 사흘 동안 평화유랑단과 함께 전라도 지역을 돌며 우리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를 알리고 돌아올 우리 마을 아줌마 네 분을 모시고 각오를 듣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형수님들, 어서 나오세요.”


저렇게 수줍을 수가 있을까. 마이크를 쥐고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저, 떨리는 가슴. 영숙 씨와 평기엄마, 유리엄마, 부녀부장님은 과연 아이들 밥 걱정, 남편 걱정, 농사 걱정을 떨쳐내고 화려한 선전일꾼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아, 가슴은 콩딱거리고, 입술은 떨어지질 않는다. “아따, 노래방이라고 생각하고 싸게싸게 얘기 좀 해봐” 장난 섞인 불만이 터져 나온다. 아줌마들은 겨우 각오를 다지고, 노래 한 자락까지 뽑고서야 멍석에서 내려왔다. 모락모락 밤이 무르익는다. 한국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예선전이 열리는 밤이었다. 주민들은 그래도 조국을 버릴 수는 없어 한국팀을 응원하러 저마다 집으로 향한다. 50년 전, 바다를 메워 죽어라 일군 땅과 집을 빼앗아 미군에게 넘겨줬던 무능한 조국에 아직 미련이 남은 탓일까. 2005년 오늘, 겨우겨우 다시 일궈 자식농사 쌀농사 지으며 일평생의 땀을 뿌린 땅과 집을 또 빼앗아 미군에게 넘겨주려는, 괘씸한 조국에 ‘미워도 다시 한번’의 미련이 남은 탓일까. 텔레비전 앞에 선 팽성읍 농민들은 가슴 졸이며 대~한민국을 응원할 것이다. 저들이 조국 생각하는 것처럼, 조국도 저들 생각할까.


올해 일흔한 살 잡순 홍남순 할머니는 스물네 살에 팽성으로 시집을 왔다. 남편과 바다를 메워 “죽을똥 살똥 다 싸가며” 땅을 일궜다. 오남매를 키워 시집장가 다 보내고 살아온 것도 그 땅 덕분이었다. 한낮의 땡볕 아래서 대추리 미군기지 철조망 옆 밭에 팥을 심던 홍남순 할머니는 “미군놈들 기지확장 문제 때문에 이 나이에 죽을 맛을 다 본다”며 울먹거렸다.


팽성읍 도두2리에 사는 예순여덟 살 잡순 문차분 할머니는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지만 남편과 결혼해 어찌어찌 살다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래도 20년이나 살았으니 고향이나 진배없다. 농사지어 사는 것도 겨우겨우 사는 일인데, 집도 땅도 다 뺏기면 또 어디로 흘러들어 살아야 할 지 걱정이다. 이 말년에 말이다.


칠십 평생을 땅만 일구며 살아온 조창목 할아버지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팽성 도두리 벌판에서 주최한 평화미사 도중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눈물로 토해냈다.


 

여든여덟 살 잡순 조선례 할머니는 해방 뒤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대규모로 확장된 기지에 밀려 집과 땅을 빼앗겼다. 미군 불도저는 이주할 틈도 주지 않고 논밭을 짓이기고 담을 허물었다.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기만 했지, 한 마디 대꾸 할 줄 몰랐다. 할머니의 옛집 위에서 지금은 미군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지금 대추리는 진짜 대추리가 아니다. 밀리고 밀려와 가까스로 터를 잡은 가짜 대추리다. 진짜 대추리를 그리는 할머니의 꿈은 미군을 섬기는 이 땅에서 불온하다.


마흔셋 먹은 ‘젊은이’ 신종원 씨는 대추리에서 태어났다. 미군기지에서 터져 나오는 총소리건 검은 연기건 ‘태어날 때부터 보고 들었던 거니까’ 좋고 나쁘고를 모르고 여지껏 살아왔다. 젊은 시절 이런저런 방황도 했지만, 고향이 좋고 농사도 잘만 지으면 먹고 사는데 큰 걱정은 없을 것 같아 농사일에 매달렸다. 그런데 이런 제길, 땅을 내놓으란다. 자기 땅에서 쫓겨난 아버지 세대의 설움을 자식보고 이어가란다. 이런 염병할 짓이 또 있을까. 그는 요즘 농사일에 매달리지 못한다. 이 농사꾼에게 팽성대책위 조직국장이란 낯선 직책이 주어졌다.


이 책을 다 메운다 해도 이 구비, 저 구비의 사연들을 모두 담지는 못할 것이었다. 떠나라.... 제 나라 관리들로부터 “떠나라”고 명령받은 농민들이 되레 “떠나라”고 새긴 깃발을 들판에 세우고 있었다. 그 깃발은 반세기 전 집과 땅에서 떠밀리며 눈물을 머금었던 늙은 농부와 그 자식들의 되물음이었다. 대체 왜, 누굴 위해, 어디로 떠나란 말이냐.

해외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한 세계적 차원의 재배치 개념, 주한미군의 아시아 태평양 신속기동군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체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과 한반도 전쟁가능성 고조, 이에 따른 무한 군비경쟁 가속화 등의 어려운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풀어야할 숙제다. 이 땅에서 전쟁으로부터, 미군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어렵다. 그래도 우리, 수도 서울과 의정부일대에서 빼낸 미군기지를 어딘가에는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그게 평택이라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속 터지는 소리를 하지는 말자. 그런 입이라면 아예 다물자. 아니면 저 여든여덟 살 잡순 조선례 할머니 앞에서 떠들어 보든지. 457만평도 모자라 349만평을 더 내놓으라는 전쟁광들을, 우리는 왜 ‘한반도 어딘가’로 보내야 한다고만 생각한 것일까. 저 넓고 광활한 ‘아메리카 어딘가’라면 더 좋지 않은가? 발상은.... 전환할 때 쓸모가 있는 것이다.


너른(平) 들녘과 못(澤)이 많아 평택이라던가. 저 너른 들과 못을, 저 단단한 손들이 여전히 일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