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수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을 걸어놓고 수도하는 범부속자(凡夫俗子)가 많다. 명리와 부귀를 추구하지 않고, 안일한 사람이 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고, 신심이 견고하고 세속의 일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득(得)이다.
원력(原力)은 단지 수도인의 본격(本格)일 뿐이다.
강직하고 솔직담백한 사람이 어느날 자아의 집착과 속박에 걸려든다면, 자기의 본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할 수 없으니 이렇게 되면 심령이 가장 큰 상해(傷害)를 입은 것이다.
적성(赤誠)한 마음은 천제(天際) 에 접근하게 하고, 풍파(風派)는 영혼(英魂)을 성취하게 한다.
과거의 지나간 일이 생각나 홀연히 마음속에 화내는 마음이 생겨나면 비록 도를 증득하고 성불을 이미한지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고겁(考劫)으로 떨어지게 되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수도인의 마음에 공정한 의리가 존재한다면 기이하고 요사한 잡기들이 어떻게 침범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공정과 불공정, 선량과 사악을 나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광(陽光) 밑에 함께 서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검은 실과 흰실이 천을 짜는것과 같다. 검은 실이 끊어지면 방직공은 전체의 직물을 살펴 바라보고 방직기계를 검사해야 한다.
도와 재앙은 함께 내려오고, 부처와 마귀는 함께 행동한다. 도가 없으면 재앙을 구제할 수 없고, 재앙이 없으면 도를 증명할 수 없다. 부처가 없으면 마귀는 존재의 의의가 없고, 마귀가 없어지면 부처 또한 성불할 수 없다. 이러한 상천의 교묘한 안배가 있으므로서 비로소 일체를 이루어낼 수 있다.
감사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