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이황(李滉)
이런들 엇더하며 뎌런들 엇더하료?
草野愚生(초야 우생)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물며 泉石膏肓(천석고황)을 고텨 므슴하료?
煙霞(연하)에 집을 삼고 風月(풍월)로 벗을 사마
太平聖代(태평성대)에 病(병)으로 늘거나뇌
이 듕에 바라는 일은 허므리나 업고쟈.
淳風(순풍)이 죽다하니 眞實(진실)로 거즈마리
人性(인성)이 어지다하니 眞實(진실)로 올흔 말이
天下(천하)에 許多 英才(허다 영재)를 소겨 말씀할가.
幽蘭(유란)이 在谷(재곡)하니 自然(자연)이 듯디 됴희
白雪(백설)이 在山(재산)하니 自然(자연)이 보디 됴해
이 듕에 彼美一人(피미일인)을 더옥 닛디 몯하얘.
山前(산전)에 有臺(유대)하고 臺下(대하)애 有水(유수)ㅣ로다.
떼만난 갈며기는 오명가명 하거든
엇디다 皎皎白鷗(교교 백구)는 멀리 마음하는고
春風(춘풍)에 花滿山(화만산)하고 秋夜(추야)애 月滿臺(월만대)라.
四時佳興(사시가흥)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魚躍鳶飛(어약연비) 雲影天光(운영천광)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
天雲臺(천운대) 도라드러 완락재 瀟灑(소쇄) 한듸
萬卷 生涯(만권생애)로 樂事(낙사)ㅣ 無窮(무궁)하애라.
이 듕에 往來 風流(왕래풍류)를 닐어 므슴할고.
雷霆(뇌정)이 破山(파산)하여도 聾者(농자)는 못 듯나니
白日(백일)일 中天(중천)하야도 瞽者(고자)는 못 보나니
우리는 耳目(이목) 聰明(총명) 男子(남자)로 聾瞽(농고) 같디 마로리.
古人(고인)도 날 몯 보고 나도 古人(고인) 몯 뵈.
古人(고인)을 몯 뵈도 녀던 길 알패 잇네,
녀던 길 알패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當時(당시)예 녀던 길흘 몃 해를 바려 두고,
어듸 가 다니다가 이졔야 도라온고?
이졔나 도라오나니 년 듸 마음 마로리.
靑山(청산)은 엇뎨하야 萬古(만고)애 프르르며,
流水(유수)는 엇뎨하야 晝夜(주야)애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萬古常靑(만고 상청)호리라.
愚夫(우부)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聖人(성인)도 못다 하시니 긔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 주를 몰래라.
작자가 향리(鄕里) 안동(安東)에 물러가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며 자신의 심경을 읊은 12수의 연시조. 전 6곡은 ‘언지(言志)’ 후 6곡은 ‘언학(言學)’으로 되어 있다.
더욱이 이 작품은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와 짝을 이루는데, 이이(李珥) 역시 뛰어난 성리학자였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노래는 지은이가 명종 20년에 도산서원에서 후진을 가르치던 때에, 지은이의 뜻을 말한 언지(言志-때를 만나고 사물에 접하여 일어나는 심정과 감흥을 읊음) 전 6곡과, 학문과 수련의 실제를 시화(詩化)한 언학(言學) 후 6곡 등 12수로 된 연시조이다.
인간 속세를 떠나 자연에 흠뻑 취해 사는 자연 귀의 생활과 후진 양성을 위한 강학(講學)과 사색에 침잠(沈潛)하는 학문 생활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해 놓았다.
이 작품의 끝에 붙인 발문(跋文)에 지은이 자신이 이 노래를 짓게 된 연유와 우리 나라 가요를 평하는 말 가운데, 그의 문학관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 가곡이 무릇 음란한 노래가 많아서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 되며 이별(李鼈)이 ‘육가(六歌)’를 본떠 이 노래를 짓는다고 밝히고 있고, 또한 이를 아이들로 하여금 익혀 부르게 하여 나쁜 마음을 씻어 버리고 서로 마음이 통하게 하고자 한다는, 퇴계의 문학관을 밝히고 있다.
‘도산육곡(陶山六曲)’, ‘도산전후육곡(陶山前後六曲)’이라고도 부른다.